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선종하시다.

      竹巖 리드민

 

* 출생국 : 아르헨티나.

* 출생 : 1936년 12월 17일.

* 선종 : 2025년 4월 21일 오전 7시 35분.

* 수상 : 2019년 타임 세계에서 거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7년 타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2015년 타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경력 : 2013년 3월 ----제 266대 교황.

2005년 11월부터 2011년 11월 까지 아르헨티나 주교 회의 의장.

* 사이트 : 인스타 그램. x (트위터).

* 활동 : 도서, 오디오 북.

 

< 장례식 상황>

전 세계 40만명이 마지막 배웅하다. 모두에게 마음을 연 민중의 교황님이었다.

장례 미사는 2시간 여 걸쳐 거행 되었다.

트럼프 등 130여개국 대표단이 참석해서 소박한 목관에 안치되어 생전 자주 찾던 로마 성모

대 성전에 안장되었다.

9일간의 애도기간 속에 내달 5일부터 10일 사이 차기 교황을 뽑는 콘클라베가 시작된다.

교황님은 전 세계인의 애도속에 영면에 들어가셨다.

장례미사가 26일 오전 10시 (한국 시간 오후 5시) 바티칸 성베드로 광장에서 엄수되었다.

 

교황님이 선종한지 5일만에 열린 장례식 미사는 교황님이 잠든 목관을 성베드로 대성전에서 광장의

야외 제단으로 운구하여 시작되었다.

교황님의 유언대로 목관은 아무런 장식없이 십자가 문양만 새겨져 있고 위로 복음서가 놓였다.

장례 미사는 입당송 " 주여, 영원한 안식을 내리소서" 와 기도, 성경 강독, 성찬 전례, 관에 성수를

뿌리고 분향하는 고별식 예식 순서로 약 2시간 가량 거행되었다.

장례식에는 약 25만명의 인파가 성베드로 광장과 주변 일대를 가득 메웠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볼로디므르 젤란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유럽 연합(EU) 집행 위원장 ,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등을 비롯해서 세계 60여국 정상과

왕족, 국가 원수, 130여국 대표단이 바티칸을 찾았다.

미사를 주례한 추기경단 단장 조반니바티스타 례 추기경은 강론에서 "교황님은 최근 몇년간 잔혹한 전쟁과

비 인간적 공포,수많은 죽음과 파괴에 대해 쉼 없이 평화를 간청하고, 이성적이고 진실된 협상으로 해결

책을 찾도록 촉구했다" 고 말했다.

교황님이 멕시코와 미국 접경지역에서 미사를 집전하고, 그리스 레스보스섬에서 난민 12명을 바티칸으로

데려온 일화를 떠 올렸다. "모두에게 가까이 다가 가고자 했고 소외되고 작은 이들에게 특별한 관심

기울렸다. 며 모든 이에게 마음을 연 민중의 교황님이었다" 고 추모했다.

 

장례 미사가 끝난 뒤 교황님의 관을 실은 운구자가 로마시내를 가로질러 장지인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

(성모 대 성전)으로 출발했다.

운구자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5년 필리핀 방문때 탔던 전용 의전 차량 "포프모발"을 개조했다.

관속에는 고위 성직자의 책임과 권한을 상징하는 팔리움(양털로 짠 고려모양의 띠) , 재위기간 주조된

동전과 메달, 그의 재위 기간 업적을 담은 구루마리 형태의 문서가 철재 원통에 봉인되었다.

과거에는 장례 미사를 마친 뒤 사이프리스와 아연 참나무 등 세겹으로 된 삼중관 입관 절차를 거쳤다.

그러나 평소 소박하게 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해 11월 장례예식을 개정해 삼중관 대신 아연으로

내부를 덧댄 목관 하나만 쓰도록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대부분 전임 교황이 묻힌 성 베드로 대성전 지하묘지 대신 평소 즐겨 찾던 로마 테르마니 기차역 인근의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 성전을 장지로 택했다.

교황님이 바티칸 외부에 묻히는 것은 1903년 로마 라테라노 대 성전에 안치된 레오 13세 이후 122년만이다. 성 배드로 대 성전과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 성전은 약 6Km 거리다.

운구 행렬은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이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수 있게, 사람 걸음 속도로 천천히 이동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 성전에 도착했다.

운구 차량이 지나는 아파트 건물에는 이탈리아어로 "감사합니다, 프린시스코" 라는 대형 현수막이 내 걸렸고

기도하거나 눈물을 흘리는 이들도 곳곳에서 포착되었다.

교황청과 이탈리아 정부에 따르면 성 베드로 성당 장례 미사에만 25만명, 운구 행렬에는 15만명 등 최소 40만명이 교황님의 마지막 길을 배웅한 것으로 추산했다.

 

교황님은 과거 촛대 받침을 보관하던 대 성전 벽면 안쪽의 움푹 들어간 공간에 안장되었다.

관이 놓이는 위치에는 흰 대리석 받침에 "프란치스쿠스"라는 라틴어 이름만 새겨졌다.

현지 매체들에 따르면 이 비석은 이탈리아 북서부 해안지방 리구리아산 대리석으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리구리아는 교황님의 외증조부가 1800년대에 아르헨 티나로 이주하기 전 살던 곳이다.

한국 정부는 유인촌 문화 광광부 장관을 단장으로 민관합동 조문 사절단을 파견했다.

오현주 주교황청 한국 대사와 안재흥 천주교 평신도 사도 직 단체협의회장이 사절단원으로 동행했다.

염수정 추기경과 한국 천주교 주교회 의장인 이용훈 주교. 정순택 대주교, 임민균 신부, 최광희 신부,

등이 한국 천주교 조문단으로 참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생전 요청으로 이날 장례미사에 이탈리아 난민 구호단체인 지중해 구조단과 리비아 난민 대표단 등도 참석했다. 교황님은 2013년 즉위 후 첫 방문지로 이주민 비극을 상징하는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섬을 찾을 정도로 이주민과 난민 문제에 큰 관심을 기울이며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왔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 성전에서는 수감자와 노숙자등이 교황님을 맞이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시신은 허리 높이 관대를 쓴 전임자들과 달리 바닥과 가까운 낮은 곳의 목관에서 조문객을 맞았다.

이날 장례미사를 시작으로 5월 4일까지 "노벤디알리"로 불리는 9일의 애도기간에 성 베드로 광장에서 매일

추모 기도회가 열릴 예정이다. 교황님의 무덤은 오는 27일부터 일반에게 공개된다.

 

후임자를 뽑는 콘클라베 추기경단 비밀회의는 5월 5일부터 시작된다. 만 80세 미만 추기경 135명은 콘클라베 첫날 오후 한번, 이튿날 부터는 매일 두차례 투표한다.

전체 선거인의 3분의 2 이상을 득표한 후보자가 나오면 투표 장소인 시스티나 성당 굴뚝에 흰 연기를 피워 당선자가 나왔다고 알린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지난 21일 오전 7시 35분 뇌졸증과 심부전으로 선종했다.

1936년 아르헨티나 에서 태어난 그는 1282년 만의 비유럽 최초의 신대륙 출신으로 2013년 교황에 선출되었다. 빈자의 성자로 불렸던 이탈리아 성인 프란치스코를 교황명으로 택하고 청빈하게 살았다.

동성 커플에 대한 가톨릭사제의 축복을 허용하는 등 역대 가장 진보적인 교황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세계인의 애도속에 프린치스코 교황님은 이렇게 우리곁을 영원히 떠나셨다

참으로 애석하기 짝이 없다.

 

2015. 4. 27. 竹巖 리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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